미식은 ‘맛있음’ 그 자체를 의미하지만,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그 맛을 세상에 선보이고 있는지 과정을 담고 있다. 만약 엄홍도가 단종에게 음식을 올릴 때, 누가, 어떻게 이 음식을 준비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저 단종이 음식을 안 먹었네, 먹었네 하는 행위로만 그 장면을 받아들였을 지도 모른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아직 100만 관객이 되지 않았을 때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엄흥도가 단종에게 누가, 무엇을 기르고, 채취하고, 잡아서 이 음식이 지금 밥상 위에 있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관객 누구나 그렇듯 영화의 어느 순간에 단종이 생을 달리 한다는 것을 알고 보는 영화이고, ‘리틀 포레스트’처럼 당연히 음식이 나오는 줄거리를 예상하고 본 것이 아니었기에 엄 씨의 소상한 음식 설명에 비극의 긴장감은 무장해제 되었고, 긴장 대신 되려 미소가 지어졌다.
밥상 설명이 이어지는 장면을 볼 때마다 ‘아는 농부가 차린 밥상이네, 로컬푸드야’ 속으로 생각도 하고, 단종의 밥상에 올랐던 음식을 순서대로 먹어보고 싶기도 했다. 영화 속 음식들은 단종과 마을사람들을 연결시키는 매개이기도 하고, 단종의 심리적 변화를 상징하는 영화적 도구이겠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무엇보다 지금도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음식들이어서 나중에 영월을 가게 되면 사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단종 밥상에 다슬기국이 올랐다. 장수에도 다슬기로 유명한 집들이 있어 영화를 본 며칠 뒤에 나도 모르게 영화를 떠올리며 다슬기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다슬기 수제비를 사먹었다. 영화는 어느덧 1400만 관객을 넘어섰고, 많은 이들이 영월을 방문하고 있다. 당연히 영월의 음식도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터이다.
미식은 ‘맛있음’ 그 자체를 의미하지만,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그 맛을 세상에 선보이고 있는지 과정을 담고 있다. 만약 엄홍도가 단종에게 음식을 올릴 때, 누가, 어떻게 이 음식을 준비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저 단종이 음식을 안 먹었네, 먹었네 하는 행위로만 그 장면을 받아들였을 지도 모른다. 생산부터 조리까지의 과정에 서사가 담기면 문화가 된다는 사실을 영화를 보며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어느덧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대한민국은 전 세계 유행과 문화적 매력의 선구자가 되었다. K-팝, K-뷰티만 그런 것이 아니라 K-Food도 그렇다. 김밥, 떡볶이, 라면, 치킨, 김치, 심지어 봄동겉절이 비빔밥까지 한국의 음식은 세계인이 즐겨 찾는 음식이 되거나 밈으로 소비하는 음식이 되었다. 한국 음식을 해먹는 것을 콘텐츠로 삼는 크리에이터도 많다. 한국에 오면 편의점에 가서 커피에 바나나맛 우유를 타서 먹거나, 한강이나 무인가게에서 라면을 먹는 외국인 쇼츠 콘텐츠는 이제 너무 많아서 식상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오히려 노포의 맛, 지방의 맛을 찾아 떠나는 외국인 콘텐츠의 양이 많아지고 있음이 영상채널에서 느껴질 정도이다.
최근 농식품부는 지역의 특색 있는 식재료와 음식을 지역 명소 등과 연계하여 내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하기 위해 전국의 다양한 닭요리와 지역 관광자원을 결합한 K-치킨벨트(K-미식벨트)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춘천의 닭갈비, 안동의 찜닭, 목포의 닭요리 등의 대표 메뉴와 K-로컬 미식여행 33선을 엮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글로벌 미식 거점을 조성하고,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시그니처 메뉴를 개발하고 기존 치킨업계의 제조 인프라를 견학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선보인다고 한다.
농식품부는 2024년부터 지난해까지 순창과 담양의 장류, 광주의 김치, 금산의 인삼, 안동의 전통주 등을 주제로 한 미식 벨트를 차례로 조성했으며, 올해 치킨벨트, 그리고 2032년까지 30개의 미식벨트를 목표로 삼고 있다.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미식벨트 사업이 농민의 삶, 지역민의 삶, 농민의 경제, 지역민의 경제와 연결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지역을 발전시킨다는 목표로 진행된 농업분야의 신성장 사업은 전문가라는 이유로 외부인의 복사하기식 컨설팅과 당해연도 이벤트식 시범사업 운영이라는 결과를 낳아왔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을 가진 외부인이 지역의 콘텐츠를 사업화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 되어 왔다. 특산물로 시그니처 메뉴가 될 수 있다고 메뉴를 개발해도 정작 고령화된 주민들은 당사자들이 해낼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 용역 연구만 진행되고 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필요성은 알겠으나, 치킨벨트, 미식벨트 조성 사업에는 대기업들이 포진될 수밖에 없다. 상당수의 육계 농장은 닭고기를 판매하는 기업의 계약 당사자들이다. 치킨벨트가 거래적 우위를 점해 육계농가에게 불공적 계약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K-미식벨트 조성 사업이 농가의 농가를 위한 농가에 의한, 지역민의, 지역민을 위한, 지역민에 의해 계획되고 운영될 때 비로소 미식벨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역음식의 문화적 미식을 만드는 힘은 농민과 지역주민에게 있다. 지금 영월처럼 말이다.
<한국농어민신문 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