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질한 닭의 뱃속에 인삼과 대추, 마늘, 찹쌀을 채워 푹 끓인 삼계탕. 삼계탕은 한국인이라면 복날의 ‘복(伏)’ 자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표적인 여름 보양식이다. 사실, 삼계탕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인삼이 워낙 값비싼 약재였기 때문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인삼을 넣은 닭요리는 흔한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무엇으로 닭의 뱃속을 채웠을까?

살 오른 묵은 암탉을 손질한다. 삶아서 쓴맛을 우려낸 도라지 한 사발, 생강 4-5개, 파 한 줌, 천초 한 줌, 청장 한 종지, 식초 반 종지, 기름 반 종지를 섞어 닭의 뱃속에 넣는다. 닭과 남은 양념을 그릇에 담고 기름종이로 입구를 봉하고 사기 접시로 덮은 다음 솥에 넣어 중탕한다. 닭요리 중 으뜸이다.

위의 조리법은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이 쓴 농서 『산림경제(山林經濟)』에 기록된 칠향계(七香鷄)를 현대어로 재구성한 것이다. 어떻게 만들었기에 닭요리 중 으뜸(第一上品)이라는 찬사를 받았을지, 우선 함께 그 비법을 살펴보자.

첫째, 우선 살진 묵은 암탉을 쓴다. 5~7호 사이의 작은 닭으로 만드는 요즘의 삼계탕과 달리, 고기의 맛과 영양이 충분하도록 오래 키운 닭이다. 둘째, 물에 넣어 삶지 않고, 중탕으로 조리한다. 물에 넣어 끓이지 않으니 닭고기의 맛있는 육즙이 중탕용 사발에 진하게 고였을 것이다. 셋째, 음식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일곱 가지 향이 나는 재료를 썼다. 도라지를 넣어 약효를 더하고, 생강, 파, 천초 같은 향채로 닭의 누린내를 잡고, 청장, 식초, 기름으로 맛을 보탰다. 인삼은 쓰지 않았다. 그럼 인삼을 쓴 삼계탕은 언제부터 대표적인 복날 보양식이 되었을까. 우선, 도라지가 아닌 인삼을 쓴 닭요리는 일제강점기 요리책인 『조선요리제법』(1936)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닭을 잡아 내장을 빼고 발과 날개 끝과 대가리를 잘라버리고 뱃속에 찹쌀 세 숟가락과 인삼가루 한 숟가락을 넣고 쏟아지지 않게 잡아 맨 후에 물을 열 보시기쯤 붓고 끓여 한 보시기쯤 만들어서 짜서 먹나니라.

일제강점기, 드디어 인삼이 들어간 닭요리가 요리책에 등장했지만, 이 시기 삶거나 중탕한 닭요리는 인삼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백숙으로 불렀다. 요리명에 ‘삼’자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해방 전후의 일로, 처음에는 음식명 조어의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주재료인 닭을 앞세워 ‘계삼탕’이라고 했다. 삼은 1960년대가 되어서야 닭[鷄] 앞에 설 수 있었다. 1970년대 이후 인삼 재배가 늘고 양계 산업이 발달하면서, 삼계탕도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다. 이제 삼계탕은 한국을 대표하는 보양식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K-FOOD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에도 연일 폭염이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인삼가루를 넣은 백숙이든 수삼을 넣은 계삼탕 혹은 삼계탕이든, 또는 조선의 비법 양념 일곱 가지가 들어간 칠향계든 무엇이든 좋으니, 살진 닭 한 마리 푹 고아 먹고 건강한 7월 맞이하시기를 바란다.

서모란 제주한라대 호텔조리과 겸임교수

※ 조선의 K-FOOD - 조선시대 농서, 백과사전, 요리책을 통해 알아보는 엉뚱하고 기발한 조선시대 음식 이야기. 필자는 문헌과 구술 조사를 바탕으로 하는 음식연구자이며 요리책 수집가이다. 100년 전 한식 요리책을 포함해 6000권 이상의 음식 문헌을 수집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음식에 관한 글쓰기와 연구, 강의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농어민신문 6월 30일>